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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죽은 경제학자에게, 오늘을 묻다 연재를 시작하며 — AI 시대, 평범한 우리가 살아남는 법

신대기 스페셜올림픽코리아 대외협력 부위원장
사람의 직관(EQ)과 AI의 분석(IQ)을 결합한 ‘듀얼브레인’ 방식으로 글을 씁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하는 이 일, 몇 년 뒤에도 남아 있을까.’ 인공지능이 보고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번역을 하고, 코드를 짠다. 어제까지 사람의 일이던 것이 오늘 기계의 일이 된다. 막연히 불안하다. 그런데 정확히 무엇이 불안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누구도 또렷하게 말해 주지 않는다.

 

이 막막함 앞에서, 나는 조금 엉뚱한 곳에 답을 구하기로 했다. 이미 세상을 떠난 경제학자들이다.

 

애덤 스미스는 1776년에, 카를 마르크스는 1867년에, 케인스는 1936년에 책을 썼다. 인공지능은커녕 컴퓨터도 없던 시절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이 평생을 바쳐 풀어낸 질문이, 지금 우리의 질문과 똑같다.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신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부는 누구에게로 흘러가는가. 그 격변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산업혁명기에 방직기가 직조공을 밀어냈고, 20세기에는 컨베이어벨트가 숙련공의 자리를 바꿔 놓았다. 거장들은 그 격변의 한복판에서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끝까지 인간의 몫으로 남는가’를 들여다봤다. 인공지능은 그 오랜 역사의 가장 최신 장면일 뿐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이 영화를 봤다.

 

한 가지 정직하게 밝혀 둘 것이 있다. 이 글은 인공지능과 ‘함께’ 쓴다. 사람의 직관과 판단에, 인공지능의 분석과 정리를 결합하는 방식이다. 방대한 경제 사상을 한 사람이 모두 읽고 꿰는 일은 한 평생으로도 벅차다. 그 작업을 인공지능이 거들었다. 이 사실을 숨기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글이 곧, 이 글이 하려는 말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도구다. 망치와 같다. 같은 망치로 누군가는 집을 짓고, 누군가는 손가락을 찧는다. 지금 세상은 둘로 갈리고 있다. 인공지능을 부려 자기 일을 키우는 사람과, 인공지능에 일을 빼앗기는 사람. 같은 기술 앞에서 누군가의 입지는 올라가고 누군가는 내려간다. 갈림길은 재능이 아니라 ‘어떻게 쓰는가’에 있다.

 

그래서 이 연재가 내놓으려는 것은 거창한 성공 공식이 아니다. 그 갈림길에서 적어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한, 생존의 기본기다. 거장을 한 사람씩 불러내 단 세 가지만 물을 것이다. 당신의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맞는가. 그래서 나는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한 문장으로, 기억할 무기를 달라.

 

거장이라고 해서 무조건 떠받들 생각은 없다. 맞은 것은 맞다 하고, 틀린 것은 틀렸다 가릴 것이다. 솔직히 말해 거장도 절반은 틀렸다. 다만 그 절반의 통찰이, 지금도 충분히 우리를 살린다.

 

어렵지 않게, 그러나 깊게. 출근길에 가볍게 읽되 하루를 버틸 한 줄이 남도록 쓰려 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강력해져도, 끝까지 인간의 몫으로 남는 선택이 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거장들이 입을 모아 가리키는 그 지점을, 앞으로 이 지면에서 함께 더듬어 가려 한다.

 

다음 글에서는 첫 번째 거장을 만난다. 250년 전 스코틀랜드에서 모든 것을 시작한 남자, 애덤 스미스다.

 

스페셜올림픽코리아 대외협력 부위원장

신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