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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평화, 정의

"가슴에 새긴 23명의 이름" 화성 아리셀 참사 2주기 추모표지석 제막

미담플러스 박상희 기자 

 

화성 아리셀 공장 중대재해 참사가 발생한 지 2년여 만에 참사 현장 앞에 희생자 23명을 기리는 추모표지석이 세워졌다.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는 표지석 완공을 알리며 정부와 화성시를 향해 온전한 추모공간 조성을 재차 촉구했다.

 

아리셀 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와 산재피해가족협의회, 화성시 산재사망추모 노동시민사회위원회는 6월 22일 오전 11시 화성시 서신면 아리셀 참사 현장 앞에서 '아리셀 참사 희생자 추모표지석 완공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번에 제막된 추모표지석은 가로 75㎝, 세로 80㎝ 규모로, ‘아리셀 참사 희생자 23명을 기억하며, 재발 방지를 위해 행동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특히 참사 희생자들의 국적을 고려해 한국어, 중국어, 라오스어 등 3개 국어로 기록하여 고인들을 추모하고 유가족의 아픔에 공감하겠다는 다짐을 담아냈다.

 

박덕제 민주노총 화성시대표자회의 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에는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김순길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처장 등이 참석했다.

 

 

발언에 나선 최현주 아리셀산재피해가족협의회 대표는 추모표지석 설치와 추모공간 조성 과정의 지난함을 토로하며 화성시의 적극적인 행정을 촉구했다. 최 대표는 “1년 6개월 동안 조례를 개정하고 화산동 근로자종합복지관 일대로 부지를 확정해 설계비 5천만 원을 마련했지만, 행정 절차에 막혀 당초 2주기로 목표했던 착공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올해 9월 추경을 통한 본 공사비 확보마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절박한 마음으로 표지석부터 세우게 됐다”라며, “정명근 화성시장의 적극적인 관심과 함께 향후 설계 과정에서 유가족의 의견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이어서 발언한 송성영 아리셀 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이번 표지석 설치가 단순한 추모를 넘어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한 투쟁의 시작점임을 강조했다. 송 대표는 "아리셀 참사는 특정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산업안전 체계의 민낯을 드러낸, 예방할 수 있었던 재난"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최근 진행된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노동자의 희생을 가볍게 여기는 사법부의 생명 경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고 강도 높게 규탄하며 끝까지 싸워나갈 것을 천명했다. 아울러 "조속한 추모공간 조성을 비롯해, 국적과 고용 형태에 관계없이 이주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의 안전권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과 책임자 엄벌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역시 반복되는 산업재해의 구조적 모순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양 위원장은 "대통령과 장관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가 멈추지 않는 명확한 이유는 현장의 위험이 하청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에게 떠넘겨지는 '위험의 외주화·이주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장의 안전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가 위험 시 작업을 멈출 수 있고 안전 관리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항소심에서 감형된 책임자들의 판결을 언급하며 "노동자의 목숨값에 대한 온전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사용자는 생명보다 이윤을 좇을 것"이라고 규탄하며, 희생자들의 유해 재수습과 유가족의 일상 회복을 위한 지속적인 연대와 투쟁을 다짐했다.

 

 

연대 발언에 나선 김순길 세월호참사 유가족협의회 사무처장은 기억과 추모의 힘을 강조하며 유가족들에게 굳건한 연대의 뜻을 전했다. 김 사무처장은 “참사 현장 앞에 표지석을 세운다는 건 단지 돌 하나를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이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우리 사회가 다짐하는 약속”이라며 “정부와 기업은 늘 생명보다 돈을 우선시하며 피해자 가족에게 빨리 잊으라고 강요하지만, 참사를 지우려는 이들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다시 위험으로 밀어넣는 사람들”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안산 4·16 생명안전공원 건립과 팽목항 기림비 설치 진행 상황을 언급하며, “기억을 지키려고 싸우는 것은 단지 슬픔 때문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족이 무사히 퇴근할 수 있는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다. 세월호 가족들이 걷는 이 길에 아리셀의 기억도 외롭지 않게 끝까지 함께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김형삼 민주노총 수원용인오산화성지부 의장은 지역사회와 지자체의 공동 책임을 강조하며 목소리를 보탰다. 김 의장은 "희생자 대부분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이 땅을 찾은 이주 노동자들이었다"며 "오늘 세워진 추모표지석은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다짐이자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지역사회와 지자체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처럼, 늦었지만 오늘 세워진 표지석이 향후 근로자종합복지관 내 추모공간 조성으로 이어져 안전한 화성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며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 이주 노동자도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화성시를 만들기 위해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유가족 이순희 아리셀산재피해가족협의회 공동대표는 희생자 23명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 공동대표는 “참사 발생 712일 만에 세워진 표지석을 보며 다행스러우면서도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슬픔이 교차한다”며, “꿈을 찾아 이 땅에 왔던 고인들의 마음을 이 표지석에 영원히 기억하길 바란다”고 애통해했다. 이어 “이윤을 위해 안전을 뒤로 미루고 위험을 비정규직과 이주 노동자에게 떠넘긴 결과가 바로 이 참사”라고 지적하며, “유가족을 두 번 죽인 고등법원의 감형 판결은 뒤집혀야 하고, 대법원에서 반드시 엄중한 처벌이 내려지길 원한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또한 “우리 가족들의 죽음이 허망한 숫자로 남지 않도록, 대한민국에서 다시는 이 같은 아픔을 겪는 유가족이 나오지 않도록 시민 여러분의 지지와 연대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이 공동대표의 발언이 끝난 뒤, 참가자들의 표지석 제막식과 헌화가 엄숙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한편, 참사 2주기를 맞아 추모 행사와 관련 토론회도 잇따라 열린다. 6월 24일에는 아리셀 공장 앞에서 '2주기 추모제'가 거행되며, 6월 25일 오후 2시 화성시 태안도서관 4층 다목적강당에서는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이 존중되는 화성시를 위한 토론회'가 개최되어 지역 사회 내 산재 예방과 안전 대책을 심도 있게 논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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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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