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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AI는 베낄 수 있어도, 신뢰는 베낄 수 없다

신대기 Shin Daeki
스페셜올림픽코리아 대외협력 부위원장
사람의 직관(EQ)과 AI의 분석(IQ)을 결합한 ‘듀얼브레인’ 방식으로 글을 씁니다.

요즘 사무실 풍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보고서 초안을 인공지능이 몇 초 만에 써 주고, 번역도 그림도 손쉽게 만들어 낸다. 그러다 문득 서늘해진다. 누구나 같은 도구로 같은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다면, 나라는 사람의 값어치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이 질문 앞에서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이 애덤 스미스다. 1776년 『국부론』을 써서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처음 연 인물이다. 흔히 그를 ‘보이지 않는 손’, 곧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을 설파한 사람으로만 기억한다. 그러나 정작 그가 평생 더 아꼈던 책은 따로 있었다. 『국부론』보다 17년 앞서 펴낸 『도덕감정론』이다.

 

이 대목이 의외다. 자유시장의 아버지가 정작 시장을 굴러가게 하는 진짜 토대로 지목한 것은 경쟁이나 이윤이 아니라 ‘신뢰’였다. 거래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고, 그 약속을 믿을 수 있을 때에만 시장은 돌아간다. 신뢰가 무너지면 아무리 정교한 제도도 한순간에 멈춰 선다. 250년 전 그가 내다본 이 통찰이, 인공지능 시대에 묵직하게 되살아난다.

 

인공지능은 지식과 기술을 순식간에 복제한다. 어제까지 전문가의 영역이던 일이 오늘은 누구나 버튼 하나로 해내는 일이 된다. 기술이 흔해질수록 기술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복제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신뢰다. ‘저 사람 말은 믿어도 된다’, ‘저 사람에게 맡기면 안심이다’라는 평판은 데이터로 베낄 수 없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그럴듯한 거짓을 자신 있게 지어내는 장면을 이미 자주 목격한다. 정보가 흘러넘칠수록, 역설적으로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가 가장 귀한 판단이 된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사람의 신뢰다. 기술이 평준화될수록 신뢰의 값은 오히려 올라간다.

 

그래서 인공지능 시대의 생존법은 의외로 고전적이다. 더 빠른 기술을 좇기 전에, 거짓 없이 일하고 약속을 지켜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쌓는 것이다. 그것은 알고리즘이 흉내 낼 수 없는, 온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는 자산이다.

 

물론 스미스가 모든 것을 옳게 본 것은 아니다. 그는 개인의 이기심이 ‘보이지 않는 손’을 거쳐 공익으로 이어진다고 믿었지만, 오늘날 거대 플랫폼이 데이터를 독점하는 현실은 그 손이 늘 공정하게 작동하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거장도 절반은 틀린다. 다만 신뢰가 시장의 토대라는 그의 통찰만큼은, 지금도 충분히 우리를 살린다.

 

인공지능에게 일을 맡기더라도, 그 결과에 책임지고 신뢰를 지키는 일은 끝까지 사람의 몫이다. 기술은 빌릴 수 있어도 신뢰는 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두 번째 거장을 만난다. 150년 전, 누가 진짜 부를 쥐게 되는가를 꿰뚫어 본 카를 마르크스다.

 

스페셜올림픽코리아 대외협력 부위원장

신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