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문아트센터는 오랫동안 단순히 전시 공간을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 작가가 자신의 세계를 깊이 탐구하고 성장할 수 있는 레지던시이자 창작 공동체를 지향해 왔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와 철학을 가진 작가들이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며, 때로는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때로는 침묵 속에서 각자의 세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갑니다. 저는 이러한 시간이야말로 한 명의 예술가를 만들어가는 가장 소중한 과정이라고 믿습니다.
이번 전시<Scrolling through scent >는 창문아트센터 상주작가인 이경진작가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사유와 감각이 응축된 결과물입니다. 프랑스 국립 렌느2대학교 조형예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친 후 귀국하여 국립 강원대학교 교육대학원 강사를 역임한 이경진 작가는 개인전 21회, 단체전 60여 회, 아트페어 40여 회를 비롯하여 프랑스, 네팔, 핀란드, 네덜란드, 벨기에, 미국 등 다양한 해외 전시를 통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꾸준히 확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작가를 설명하는 것은 화려한 이력보다도 작품이 품고 있는 '시간의 밀도'일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매일 수없이 많은 이미지를 손가락 끝으로 넘기며 살아갑니다. 화면은 계속 스크롤되지만 기억은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수많은 장면들은 지나가고, 감정은 소비되며, 기억은 저장되지 못한 채 흩어집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향기만은 다릅니다. 향기는 시간을 거슬러 우리를 가장 오래된 기억으로 데려갑니다. 어린 시절의 마당, 오래된 나무, 누군가의 품, 이름조차 잊어버린 계절까지도 향기는 말없이 불러냅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단순히 향기를 따라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현대의 시간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기억의 층위를 천천히 더듬어가는 행위이며, 스크롤이라는 디지털 시대의 움직임을 가장 아날로그적인 감각인 향기로 치환하는 철학적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경진 작가는 꽃을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꽃을 깎아냅니다. 무언가를 더하는 대신 덜어내는 행위를 통해 비로소 꽃은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과정은 인간의 기억과도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기억하는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시간이 사라진 뒤에도 끝내 남겨진 것들을 기억하는 존재입니다. 조각칼이 지나간 흔적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시간의 결이며, 삭제와 침묵을 통해 비로소 드러나는 존재의 흔적입니다. 그리고 그 위를 유영하는 나비는 자유이자 향기이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매개체입니다.
작가는 나무를 깎고, 한지를 입히고, 레진을 덮으며 전통성과 현대성을 하나의 호흡으로 연결합니다. 한지는 우리의 기억을 담는 피부가 되고, 레진은 시간이 증발하지 않도록 봉인하는 투명한 시간의 막이 됩니다. 관객은 작품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만지게 됩니다. 빛은 표면 위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보는 위치에 따라 작품은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줍니다. 그 변화는 마치 기억이 항상 현재에서 새롭게 해석되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예술은 완성된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오래 머물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작품은 설명이 끝나는 순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전시장을 떠난 이후에도 우리 안에서 계속 자라납니다. 이경진 작가의 작품 역시 그렇습니다. 꽃은 결국 꽃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향기는 결국 향기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시간, 가족, 어린 시절, 상실, 기다림, 그리고 다시 살아가는 희망이 함께 머물고 있습니다.
이번 『Scrolling through scent』전시가 여러분 각자의 마음속 깊은 곳에 오래 잠들어 있던 추억의 향기를 다시 불러내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창문아트센터 관장
박석윤
전시 안내
- 전시명 : Scrolling through scent
- 작 가 : 이경진 개인전
- 전시기간2026년 7월 1일(수) ~ 8월 2일(일)
- 장 소 : Gallery MOON (창문아트센터 內)
- 관람시간 : 월요일~토요일 오전 11:00 ~ 오후 4:00
- 휴 관 : 매주 일요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