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은 나무보다 먼저 사람의 눈을 푸르게 물들이는 계절이다.
초록의 음영이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는 여름의 길목. 한낮의 열기가 대지를 달구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속에 숨겨 둔 이정표를 꺼내 들고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한다.
최근 경기한국수필가협회에서 청강한 「인생은 여행이다」라는 강의 역시 쉼 없이 달려온 내 삶을 잠시 멈춰 세웠다. 그러나 강의실에서 얻은 깨달음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 7월의 가로수 아래를 천천히 걸으며 비로소 내 것이 되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 사이로 햇살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늘 지나던 길인데도 그날은 처음 걷는 길처럼 낯설고도 따뜻했다. 그 순간 문득 알았다. 달라진 것은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었다.
인간은 본디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길 위에서 존재를 완성해 가는 여행하는 인간이다. 우리는 모두 출생이라는 첫 간이역을 떠나 저마다의 속도로 인생이라는 외길 철로를 달리는 탑승객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여행은 때때로 본질보다 욕망을 앞세운다. 관광객이 몰려들수록 정작 그 땅의 주민들은 소음과 혼잡, 환경오염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 가는 오버투어리즘의 역설은 여행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다시 묻게 한다.
모두가 행복한 공정한 여행이란 무엇일까. 그 물음은 결국 '우리는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타인과 어떻게 함께 걸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삶이라는 여행길에서 진정 배낭에 담아야 할 것은 남에게 보여 줄 화려한 풍경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빛을 잃지 않을 추억이며 함께 걸었던 사람들의 온기일 것이다.
문학의 은하수를 돌아보면 그 길을 먼저 걸어간 여행자들이 있다. 괴테는 세상을 걸으며 인간의 가능성을 발견했고, 윤동주는 자신의 내면을 걸으며 양심의 빛을 지켜 냈다. 생텍쥐페리는 하늘을 날며 인간은 서로를 책임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진실을 전했다. 길은 서로 달랐지만, 그들의 여행은 모두 더 넓고 깊은 눈을 얻기 위한 순례였다. 미래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걸으며 미래를 만들어 간 사람들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길을 대하는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어디를 얼마나 멀리 갔느냐보다 누구와 어떤 마음으로 걸었느냐가 더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행은 낯선 곳을 찾아 떠나는 일이 아니라, 익숙한 일상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삶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 순간 같은 길도 전혀 다른 인생의 풍경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 인생이라는 기차의 어느 창가에 앉아 있을까. 혹시 오버투어리즘으로 지친 명승지처럼 우리의 삶 또한 누군가의 자리를 밀어내며 욕망만을 채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세상을 품었던 괴테처럼, 자신을 응시했던 윤동주처럼, 인간을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보았던 생텍쥐페리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여행지가 아니라 더 깊고 더 따뜻한 눈이다.
풍경은 끝내 나를 바꾸지 못했다. 그러나 한 번 바뀐 눈은 이후의 모든 풍경을 새롭게 만들었다.언젠가 출생이라는 역에서 출발한 삶의 기차가 마지막 종착역에 닿는 날,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다녀온 여행지의 이름도, 남겨 둔 사진도 아닐 것이다.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 마음,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게 된 눈,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걸었던 길의 온기뿐이다.
돌아보면 나는 평생 풍경을 찾아 여행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눈을 얻기 위해, 삶이라는 길을 묵묵히 걸어온 한 사람의 여행자였을 뿐이다.
2026. 07. 04
수필가 김종걸
◀ 김 종 걸 ▶
○ 격 월간지 〈그린에세이〉 신인상으로 등단
○ 작품집
수필집 : 〈울어도 괜찮아〉(2024)
공 저 : 〈언론이 선정한 한국의 명 수필〉(2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