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랫동안 쌓아 온 기술이 하루아침에 낡은 것이 되는 시대다. 몇 년을 들여 익힌 능력을, 이제 막 입사한 신입이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 순식간에 따라잡는다. 억울하고 두렵다. 내가 서 있던 자리가 발밑에서부터 무너지는 느낌이다. 이 불안 앞에서, 한 경제학자는 뜻밖의 위로를 건넨다.
조지프 슘페터. 그는 혁신과 기업가정신을 경제학의 한복판에 올려놓은 인물이다.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말이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다. 낡은 것이 무너지는 그 자리에서, 더 나은 새것이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는 이 파괴야말로 자본주의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이라고 보았다.
돌이켜 보면 역사는 늘 그랬다. 마차를 만들던 장인들은 자동차의 등장 앞에 일자리를 잃었지만, 그 자리에서 자동차 산업이라는 거대한 세계가 열렸다. 필름 회사가 저물자 디지털 사진의 시대가 활짝 펼쳐졌다. 파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 들어설 자리를 비우는 과정이었다.
인공지능은 이 창조적 파괴의 가장 최신 장면이다. 분명 어떤 일자리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어제까지 존재하지 않던 일과 기회가 생겨난다. 문제는 이 거대한 물결 앞에서 우리가 어느 자리에 설 것인가이다.
슘페터의 통찰이 매서운 지점이 여기다. 같은 변화의 물결 앞에서도, 파괴를 두려워하며 옛것을 붙드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재앙이 된다. 반대로 그 물결에 올라타 스스로를 바꾸는 사람에게는, 전에 없던 도약의 발판이 된다. 갈림길은 재능이 아니라 태도에서 갈린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인공지능이 내 일을 파괴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인공지능을 써서 내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파괴당하는 쪽이 아니라, 파괴하며 새로 짓는 쪽에 서는 것이다. 두려움에 옛 도구를 끌어안고 있는 한, 물결은 나를 비켜 가지 않는다.
물론 슘페터의 낙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창조적 파괴가 만들어 낸 새로운 부는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았고, 그 그늘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고통은 그의 이론이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몫이다. 거장도 절반은 틀린다. 그러나 ‘파괴의 자리에서 기회가 태어난다’는 그 통찰만큼은, 지금 우리에게 방향을 일러 준다.
낡은 어제를 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새로운 내일이 시작된다. 인공지능이라는 파도를 재앙으로 볼지 도약대로 삼을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다음 글에서는 네 번째 거장을 만난다. 왜 열심히 일해도 부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는가를 방대한 데이터로 파헤친 토마 피케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