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글에서 저는 화성 시민이 하루 중 가장 많이 빼앗기는 것이 시간이라고 적었습니다. 그 문장을 쓰고 나서, 여러 분이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동탄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 병점에서 시청까지 버스를 두 번 갈아타는 이야기, 서부권에서 읍내 병원 한 번 가려고 오전을 통째로 비우는 이야기. 사는 곳은 달라도 결론은 같았습니다. 화성에서는 이동이 곧 삶의 질입니다.
역은 늘고 있는데, 왜 체감은 그대로일까
화성의 철도망은 분명히 좋아지고 있습니다. GTX가 열렸고, 광역철도 노선도 하나씩 논의됩니다. 지도 위의 화성은 해마다 촘촘해집니다. 그런데 정작 시민의 아침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가 매일 겪는 병목은 역과 역 사이가 아니라, 집과 역 사이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빠른 열차가 들어와도, 그 역까지 가는 마을버스가 20분에 한 대라면 시민의 하루는 그 20분에 묶입니다. 큰 노선을 유치하는 일은 정치가 생색내기 좋은 일이지만, 정작 시민의 시간을 돌려주는 것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지선과 배차입니다. 화려한 개통식보다, 첫차와 막차 시간표 한 줄을 고치는 일이 더 많은 사람을 살립니다.
신도시의 도로, 구도심의 정류장
같은 화성이라도 교통의 고민은 지역마다 얼굴이 다릅니다. 동탄에서는 잘 깔린 도로가 출퇴근 시간이면 주차장이 됩니다. 인구는 계획보다 빨리 들어찼는데, 광역 도로망과 대중교통 분담률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입니다. 반면 구도심과 서부권에서는 도로가 아니라 '버스가 오느냐'가 문제입니다. 정류장에 서서 시간표를 믿을 수 없는 삶은, 그 자체로 도시가 시민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신호입니다.
그래서 교통은 하나의 정책으로 묶이지 않습니다. 동탄에는 대중교통으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설계가, 서부권에는 최소한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설계가 필요합니다. 특례시가 얻은 권한은 바로 이런 지역별 맞춤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여야 합니다. 권한이 커졌다는 것은, 더 이상 하나의 잣대로 서로 다른 동네를 재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교통은 결국 사람의 시간에 관한 문제
교통을 흔히 토목의 언어로만 이야기합니다. 몇 킬로미터의 도로, 몇 개의 나들목, 몇 분의 단축. 그러나 시민에게 교통은 숫자가 아니라 삶입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는 부모에게 10분은 하루의 여유를 가르는 시간이고, 몸이 불편한 어르신에게 정류장까지의 거리는 외출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벽입니다.
좋은 교통 정책은 평균을 보지 않고 가장 불편한 사람을 봅니다. 가장 늦게 도착하는 버스, 가장 오래 기다리는 정류장, 가장 갈아타기 힘든 환승. 그 지점을 하나씩 지워가는 일이야말로, 도시가 시민에게 시간을 돌려주는 방법입니다.
걸어서 닿는 도시를 향해
저는 화성을 걸어서 많이 다녔습니다. 걸어보면 지도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입니다. 횡단보도 없이 끊긴 인도, 자전거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큰길, 밤이 되면 캄캄해지는 정류장. 이런 것들은 큰 예산이 드는 사업이 아닙니다. 다만 누군가 그 길을 직접 걸어봤는가의 문제일 뿐입니다.
특례시 화성이 향해야 할 교통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시민이 자기 동네 안에서는 걸어서 닿고, 도시 밖으로는 막힘없이 이어지는 것. 그 두 가지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도시라면, 우리는 매일 아침 조금 더 여유로운 화성을 살게 될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도시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동국대 행정대학원 대우교수
김 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