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란스러운 정세는 때때로 그 본질을 덮고 심지어 마구 뒤섞어버리기도 합니다.
‘내란수괴 윤석열 탄핵’을 둘러싼 작금의 정세가 딱 그렇습니다. 자칫 사태를 잘못 보면, 눈앞에 펼쳐지는 논란과 싸움이 마치 우리에게 꽤 익숙한 이른바 ‘진보 vs 보수’, ‘국민의힘 vs 민주당을 비롯한 제야당’과의 정쟁처럼 비춰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태를 심각하게 잘못 이해하는 시각입니다.
‘호헌(護憲)’과 ‘개헌(改憲)’이라고 많이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호헌’은 ‘지금 있는 그대로의 헌법을 지키자’는 것이고, ‘개헌’은 ‘지금의 헌법이 낡았으니 새롭게 바꾸자’는 주장입니다. 이미 그 뜻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시피, 대체로 ‘보수주의자’들은 ‘호헌’을 주장하기 마련이고, ‘진보주의자’들은 ‘개헌’을 주장하기 마련입니다. 1987년 직선제를 쟁취했던 6월항쟁의 대표적인 구호가 ‘호헌철폐’였던 이유도, 이후 지난 38년간 급속하게 변화한 시대에 뒤처진 헌법을 바꾸자는 ‘개헌’ 주장이 진보진영에서 주로 제기되었던 것도 이유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지난 12.3 비상계엄은 이 구도를 완전히 정반대로 혼란스럽게 뒤바꿔 놓았습니다. 가장 명확한 그 핵심 이유는, 입만 열면 ‘자유민주주의’를 주창하며 스스로 ‘완고한 보수주의자’로 자처했던 윤석열 일당이 대한민국 헌법을 묵사발을 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보수와 진보 학계에서도 거의 이견이 없습니다. 혹자는 ‘비상계엄 또한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항변하는데 이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입니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조건’ 또한 분명히 헌법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77조 ①항에 있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바로 그것입니다. 지난 12월 3일 우리 모두 평온하게 보냈던 그 날을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였다고 우길 작정이라면 그 병에는 약도 없습니다. ‘망상’이라는 표현이 나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국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야당의 발목잡기’를 이유로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치역사상 ‘여소야대’가 처음이었습니까? 그런 논리라면, 대한민국에서는 비상계엄이 수도 없이 선포되었을 것입니다. 대통령은 윤석열을 뽑고, 국회에서는 야당을 더 많이 뽑아놓은 것 또한 우리 국민들이 심사숙고했던 결정이었습니다. 그 상황을 정치적으로 원활하게 풀어가는 것 또한 대통령으로서 당연한 책무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윤석열 일당은 그 당연한 책무를 수행하기는커녕 군대를 동원하여 제 야당을 ‘반국가세력’이라 몰아붙이고 국회를 강제로 해산하려 했습니다. 12월 3일 그 밤, 우리 모두 방송과 뉴스를 통하여 완전무장하고 국회로 난입한 군대를 똑똑히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시끄러우니 정리를 하려고 했다’구요? 원래 민주주의란 시끄러운 것입니다. 왕이나 귀족, 양반 같은 신분제가 아니라 5,200만 우리 국민 모두 주권자고, 그 주권자들이 저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 시끄러운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요. 그게 그토록 싫고 귀찮다면, 모든 시민들에게 ‘입틀막’을 강요하는 독재체제로 가는 것이고, 윤석열 일당이 획책했던 것이 딱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내란세력의 진압을 위해 대한민국의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사람들의 주장은 일단 모두 다 ‘호헌’입니다. 국회와 우리 국민들의 심장을 정조준하여 총부리를 들이댄 무도한 내란세력들 앞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선 후보로까지 출마했던 최재형 전 국민의힘 의원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최재형 의원은 문재인 정부 감사원장 임기 도중 직을 박차고 나와 국민의힘에 입당해 정치 중립 논란까지 자초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시쳇말로 ‘정통 보수’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명절이나 집안 행사 때마다 애국가를, 본인 뿐 아니라 형수, 제수 등 온 가족이 4절까지 완창하고 국민의례도 한다니 말 다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최재형 전 의원도 12.3 비상계엄 관련하여 “명백한 헌법과 법률 위반이고 탄핵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보수의 주장은 사실과 진실에 기초해야 한다. 거짓은 더 큰 거짓을 이길 수 없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이것이 진짜 보수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예상과 다르게 헌법재판소의 최종 선고가 늦춰지면서 날마다 혼란이 더욱 더 증폭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혼란의 진짜 원인은, 겉으로는 ‘보수’인 척하면서 내심 헌정질서 따위 가볍게 짓밟아도 된다는, 폭력으로 법원에 마구 난입하여 법치주의 자체를 통째로 뒤흔들어도 된다는 위험천만한 생각을 가진 자들의 준동 때문입니다.
보수든, 진보든 모두 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만 가능한 정치 행위들입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마음대로 군대를 동원하여 총부리를 겨누고 폭력을 행사하여 입을 틀어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미 민주주의도, 보수도, 진보도 아닙니다.
진짜 보수라면, 내란수괴 윤석열 탄핵과 단죄에 단호히 동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2025년 3월 27일
진보당 수석대변인
홍성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