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농촌 들녘은 풍요롭고 싱그러워야만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농사를 짓고 말끔하게 처리해야 할 논, 밭둑엔 폐 영농자재가 여기저기 있는 모습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말끔히 처리한 농가도 많지만, 일부 농민은 이를 간과하는 일도 있다. 이에 태안농협 53개 영농회장들은 자발적으로 폐 영농자재, 농업 폐기물, 빈 농약병, 농약 봉지를 환경을 고려하여 별도로 선별 분리하여 수거해오고 있었다. 이것은 누가 시켜서도 아니요. 오로지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 고장의 환경을 지켜내기 위함에서 시작한 일이다.
매년 6월과 12월, 2회에 걸쳐 봉사하고 수거에 대비한 홍보와 현장 방문 등은 며칠 전부터 시작한다. 농협은 우리들의 봉사에 힘을 실어주려 영업장을 폐쇄하다시피 하며 온갖 협조를 아끼지 않는다.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리라. 이미 지난 6월 7일도 그런 하루였다. 우리가 봉사하지 않으면, 이곳저곳 버려질 폐비닐이며 폐 영농자재, 온갖 쓰레기가 쌓일 텐데, 우리 주변의 환경오염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가 되리라 생각한다. 비와 흙에 엉켜있는 폐 멀칭비닐을 수거한다는 것 생각해 보라!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들이다. 필자도 관내 동네를 돌아다니며 일일이 수거를 했다. 화물차를 동원하여 몇 회에 걸쳐 폐기물을 싣다 보면 어느새 이마엔 굵은 땀이 흐르지만, 우리의 몫이라 여기며 봉사를 한다. 거들떠 보지도 않는 주민도 있다. 그러나 힘들게 일하고 허리 펴는 순간 “수고한다”라는 주민의 말 한마디에 땀방울은 어느새 희열 속에 사라지는 느낌이다. 이것이 바로 보람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봉사해 오던 영농회장들이 뿔이 났다. 환경도 지켜내고 애써 봉사하면 최소한의 예우를 제공하던 환경OO 은 지난해부터 “예산이 고갈되었다”라며 총량제에 발목이 잡혀 일회성 사업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 화성시가 농업 폐기물 처리에 드는 비용을 공급하는 것과는 비교가 된다. 처치 곤란한 폐 농약병만 해도 올 6월에도 톤 팩 자루 10개가 넘었다. 무척이나 많은 양이다. 농약 봉지만도 또 몇 팩이 쌓여있다. 더는 쌓아둘 공간이 없노라며 처리해 달라는 농협의 종용에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일반 처리업체에 의뢰하여 처리할 수밖에는 없었다.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렇게 수거해간 폐농약병은 내년 초 아마도 영 순위로 수거업체에 의해 환경OO에 팔려나갈 참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기는 것과 같은 맥락이 될 것이다. 환경OO의 지연책에 업체들의 배만 불리는 셈이다.
밤새도록 비가 내린다. 우리 곁을 떠난 저 녀석들, 혹여 비에 노출되어 또 다른 환경 오염을 시키고 있지나 않을까? 딸 시집 보낸 친정 아비의 마음과도 같다. 원칙론으로 말하자면 세상사 모든 법칙은 원인자 부담 원칙이 존재한다. 사업에서 이득을 얻었으면 이득을 얻은 자가 부담해야 할 몫이다. 이렇게 중차대한 일들은 일차적으로 농약 회사가 처리비용을 부담하든 아니면 ‘환경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채널을 일원화하여 집행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다시 말해 힘없는 농사꾼들의 희생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회의했다. 이제 더 이상 우리가 나서는 일은 바보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이 일이 아니어도 할 일은 얼마든지 많다. 소득도 뒷받침 안 되는 농사일인데 이렇게 궂은일까지 하면서도 홀대받을 바엔 할 일이 아니란다. ‘올 12월엔 참여하지 않겠다’라는 회원들의 숫자도 늘어만 간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내가 회장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의 심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농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이곳에만 국한된 일은 분명 아닐 것이다. 사회적 저변에선 이보다 더한 숱한 불협화음들이 넘쳐 나는 데도 대의제 입법기관인 국회는 당리당략에만 눈이 멀어있다. 싸우는 데에만 전력을 다한다.
그럼 우리의 행정은 어떠한가? 우리가 바라는 이렇게 사소한 안건조차도 수년째 공전 상태이니 말이다. 환경도 살리고 주민의 애환도 보듬어주는 행정, 과연 기대해도 될는지...
작성자: 김동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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