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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갯벌을 메우며 탄소중립을 말할 수 있는가

화성항 개발 구상이 국가 기후전략과 지역의 역사와 충돌할 때

 

정부는 지난 11월, 2035년까지 우리나라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겠다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확정했다. 전력·산업·수송·건물 전 부문의 대전환 없이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이며, 이는 국가 산업 구조와 에너지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이 흐름 속에서 화성시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화성은 자동차·반도체·바이오·제약 등 에너지 집약적 산업이 대규모로 자리한 도시이자 제조업 공장 수 전국 1위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과 현대기아자동차기술연구소를 기반으로 자동차 제조·부품 산업이 넓게 분포해 있고, 삼성전자나 ASML 이하 반도체 연구·제조·장비·소재 기업이 자리하고 있고 여기에 향남제약단지와 바이오밸리를 중심으로 바이오·제약 기업들까지 더해지면서 화성시는 전력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에서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한다.

 

따라서 화성시가 어떤 산업 정책과 개발 방향을 선택하느냐는 단순한 지방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 탄소중립의 성패와 직결되는 문제다.

 

그러나 최근 화성시가 다시 꺼내 든 ‘국가 수출항 화성항(가칭)’과 석천리 갯벌 매립형 산업단지 구상은 이러한 국가적 흐름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2018년 화성시가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발전종합계획 변경(안)」에 포함했던 것과 사실상 동일한 구상으로, 150만 평 이상 갯벌을 매립해 산단과 무역항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1990년대식 대규모 간척 개발 모델을 되살린 셈이다. 시대 역행이다.

 

반복되는 개발 구상, 치유되지 않은 지역의 역사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 구상이 단순한 갯벌이 아닌 특별한 역사를 지닌 지역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향리와 석천리 일대는 50년 넘게 미공군 폭격장의 피해를 견뎌 온 곳이다. 공식 사망자 12명 외에도 60명 넘는 주민이 폭격 피해와 경제·(신체적·정신적)건강의 후유증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증언이 깊게 남아 있다. 지금도 여전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폭격은 2005년에야 완전히 멈췄다. 남양만 갯벌은 화옹방조제 물막이로 어장이 무너지고, 수산물 생산은 급격히 줄었다. 폭격이 끝나고 20년이 지나면서 그나마 방조제 밖 갯벌 생태계가 안정되어 어촌계 수입이 안정화되어 왔다. 반면 최근 기후위기로 바지락 등 갯벌 생물들이 쪄죽고 농작물이 타 죽는 등 환경이 급격히 변하면서 비인간생물은 물론 농어민의 생계가 위협받고 식량안보가 위험하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갯벌을 매립해 산단과 항만을 짓겠다”는 계획을 내놓는 것은 주민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고통을 충분히 숙고하지 않은 정책 패턴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매향리 아픔을 치유한다던 매향리평화기념관과 드림파크야구장조차 주민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크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경제성·산업성·정책성 어느 기준에서도 타당성 부족

 

석천리 갯벌 매립은 경제적·산업적 측면에서도 의문이 크다. 다음의 사항을 제대로 검토했는가.

 

  • 갯벌 150만 평 매립 비용 최소 1조 원 이상
  • 인허가·환경영향평가·매립·지반 안정화·항만 조성까지 최소 15년 이상
  • 준설토만으로 매립 불가 → 추가 골재 조달 필요
  • 인근 당진 석문산단 등과 마찬가지로 미분양·저활용 가능성 큼
  • 기후위기·해양산성화로 어업 기반 약화 중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현대 산업의 수요 변화다. 반도체, 바이오, 자동차 산업이 요구하는 것은 더 이상 “넓은 땅”이 아니다.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 RE100을 위한 재생에너지 전력망
  • 안정적 전기·열 공급
  • 고순도 용수 확보 및 폐수 고도처리
  • 전기화·저탄소 공정 전환 인프라
  • 초저온·클린룸 운영을 위한 고효율 에너지 체계

 

즉, 미래 산업 경쟁력은 탄소중립 인프라와 에너지 효율 시스템에 달려 있다. 갯벌을 메워 새로운 산단을 조성하는 방식은 오히려 미래 산업 수요와 정반대 방향이다.

 

탄소중립과 환경보전은 이상이 아니라 기업과 국가의 생존조건

 

탄소중립과 RE100은 ‘환경운동가만의 구호’가 아니다. 전 세계 금융·투자·수출·공급망 규칙이 이미 그렇게 작동하고 있으며,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이에 맞춰 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정부가 2035년 NDC 목표를 높인 것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전국 최대 제조업 도시이자 탄소·전력 소비 1위인 화성시가 과거형 개발 모델을 반복한다면, 이는 환경 문제를 넘어서 지역경제·산업경쟁력·국가정책 전체를 위태롭게 하는 선택이 된다.

 

또한 ‘생물다양성’을 주류 정책으로 정하겠다는 국제협약과 국가전략은 어디에 있는가. 유네스코가 매향리 갯벌의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권고했던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그런데 화성시는 그 권고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구나 매향리갯벌 일대(화성습지)는 2018년 국제철새이동경로네트워크(EAAFP)에 등재된 EAAF142 지역으로, 동아시아-대양주 이동성 물새의 핵심 중간기착지다. 당시에도 동일한 매립·산단 계획이 추진 중이어서 화성시 요청으로 석천리 갯벌만 네트워크 지정에서 빠졌을 뿐, 해당 갯벌이 국제적으로 중요한 생태적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국제사회는 이미 이곳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었지만, 정작 지방정부는 개발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 그 길을 스스로 닫아버린 셈이다.

 

화성시는 더 정직한 질문 앞에 서 있다

 

폭격의 상처와 간척의 실패를 함께 겪은 화성 서부해안은 지금도 회복의 길을 찾고 있다. 그 위에 다시 대규모 매립과 개발을 얹는 방식은 지속가능한 지역 발전도, 국가 기후정책도, 산업 경쟁력도 담보하지 못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래된 개발 공식을 반복하는 용기가 아니라, 그 공식을 내려놓고 미래를 새롭게 설계할 용기다.

 

화성시는 이제 그 질문 앞에 서야 한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2025년 11월 24일

정한철

화성습지세계유산등재추진시민서포터즈 집행위원장

화성시민재생에너지발전협동조합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