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눈이 오면 그저 즐겁기만 했다. 비료포대에 볏짚을 넣고 동네 아이들과 미끄럼놀이를 하며 눈싸움과 눈사람 경연을 즐겼던 기억은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지금의 폭설은 그 추억과는 다른 차원의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며칠 전 기상청의 예보대로 눈은 예상보다 일찍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뭇가지에 살짝 쌓이는 정도였지만, 이내 폭설로 변하며 도로는 미끄럼판이 되고 도심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안내문자가 쏟아지고 대중교통은 마비 상태에 빠졌다. 출근길과 퇴근길은 평소보다 몇 배의 시간을 들여야 했고, 온종일 꼬인 일상은 사람들에게 큰 피로감을 안겼다.
이런 상황은 단순한 이상기후가 아닌,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기후위기의 한 단면이다. 여름에는 폭염과 폭우가 사람들을 괴롭히고, 겨울에는 예측 불가능한 폭설이 도시를 멈추게 만든다. 한때 '기후변화'로 불리던 현상은 이제 '기후위기'라는 단어로 우리를 경고하고 있다.
이번 폭설은 수도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극심한 불편함을 안겼다. 눈길에 버스는 멈추고, 도로 위의 차량들은 빙판 위에서 꼼짝도 못 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염화칼슘조차 무용지물이 되고, 발목을 넘어서는 눈은 보행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설경 사진을 공유하며 낭만을 즐기지만, 현실에서 이를 체감하는 이들의 마음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눈은 아름답지만, 기후위기의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편함 이상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도시의 시스템이 기후위기에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이런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준다.
눈이 오면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불편함이 단순히 날씨 때문이라고 치부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제 이런 변화에 적응할 방법을 모색해야 하고, 기후위기에 대한 진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번 폭설은 그저 하루 이틀의 불편함이 아닌, 미래의 일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4-11-28
화성 YMCA
조재진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