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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다시 만난 세계’, 일상의 민주주의 연속기고 7

백현빈 화성특례시 주민참여예산위원장

 

시민의 인권을 말하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 그 가족들은 인권운동 근처에도 가지 않고 자녀들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인권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글들을 읽고 쓰게 될지도 모른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이처럼 ‘위선’에 관한 날카로운 질문에 종종 직면한다. 필자가 처음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할 때 가족들에게 받았던 질문도 ‘과연 너는 얼마나 가족에게 충실한가’ 였으며, 지금 정치의 현장에서 사람들에게 받는 질문도 ‘과연 네가 지지하는 정치 조직은 얼마나 민주적인가’ 이다. 요즘과 같은 극단적인 대립의 사회에서도 필자가 계속 온건하게 말하고 끝까지 서로를 존중하고자 노력해온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지 않았을지 돌아본다. ‘민주주의’와 ‘시민의 힘’을 말하는 사람은 삶의 방식도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늘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드라마 『소년심판』의 대사처럼,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왔다.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가운데 매일 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우리 시민은 일상에서도 민주적인 생활을 경험하고 있는가.

 

일상의 민주주의는 가족이나 이웃 사이의 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누군가에겐 그저 사소한 사생활이나 동네 일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바로 이러한 경험이 ‘민주주의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 필자 역시 화성특례시 등 여러 지역사회의 회의체에 참여하고 때로는 직접 진행을 이끌면서 매번 스스로 민주주의를 묻고 확인해 왔다. 다양한 관점이 공존할 수 있는 회의장에서 ‘당신은 틀렸다’는 식의 말들이 오가는 것을 보았다. 자신의 말은 끝없이 하면서 다른 사람의 말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회의 빨리 끝내자’며 지적하는 경우도 종종 보아 왔다. 회의 자료도 제대로 읽지 않고 안건에 대해 무조건 비판부터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자체와 관련이 있는 회의에서 행정은 무조건 옳다거나 반대로 무조건 그르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 시민도 있었다.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과연 일상의 민주주의는 이래도 되는 것일까. 동네 축구는 프로 축구가 아니니 규칙을 어기고 편법을 써도 괜찮은 것일까.

 

사실 우리 일상 대부분의 영역은 민주주의와는 결이 달라 보인다. 기본적으로 ‘행정’과 ‘기업’은 오래도록 민주주의와 다른 원리로 움직여 왔다. 철저한 직급 사회, 정해진 절차에 의한 집행, 효율 우선 등의 원리는, 각자가 주인이 되고 서로 함께 존중하며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주의의 원리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생활세계의 식민화’라는 다소 낯선 표현으로 이를 설명한다. 정부와 기업처럼 잘 구조화된 ‘체계’가 역설적으로 우리의 일상인 ‘생활세계’를 잠식하고 식민화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존중받는 방식의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면 기업과 행정의 원리를 무조건 타당하고 효율적이라고 수용하기에 앞서 우리의 일상과 생활세계를 회복하는 길부터 함께 찾아보아야 한다.

 

우리 시민은 지금 어느 때보다 더 치열하게 민주주의의 시험대 위에 서 있다. 광장의 절실한 외침이 일상의 견실한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언제든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이미 우리 사회는 그것을 지난 몇 년간 경험해 왔다. 이제 우리가 앞으로 가족과 이웃, 마을과 지역에서부터 어떻게 ‘민주적인 일상’을 만들어갈지 고민하고 준비할 때이다. 일상에서부터 견고한 민주주의를 이루어가야 ‘다시 만난 세계’에서 우리 모두의 삶과 존엄성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2023년 6월 서울 신촌역 4번 출구 앞에서 1만여 명의 시민 앞에 서서 했던 연설의 일부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시민의 손으로 정권을 교체하고 당 대표를 뽑아도 우리가 만족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 이후에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온라인에서 힘내라는 댓글 하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의 동네에서부터, 여러분의 불편함을 당당하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정당에도 정치에도 당당하게 우리가 정책을 요구하고, 안 되면 될 때까지 흔들어서라도 바꾸어야 합니다.”

 

[정면돌파 청년, 백현빈]

* 서울대학교 박사과정 수료(정치학전공)

* 서울대학교 석사 졸업(행정대학원 행정학전공)

* <마을의 인문학> 대표

* 서울의소리 <백현빈의 정면돌파> 방송 진행자

* 더불어민주당 초대 청년명예국회의원 역임(기재위 부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 부위원장

* 화성시 제 6대 주민참여예산위원장* 화성시 제 2대 청년정책위원장

* 경기도 주민참여예산위원회 5, 6기 문광복지분과 위원

* 경기도교육청 주민참여예산자문위원회 연구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