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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짧은 만남, 아름다운 인연

수필가 김종걸

이른 아침, 전화 한 통이 왔다. 저장된 전화가 아니었기에 잠시 망설이다가 받은 수화기 너머 울음 섞인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김 교수님이 돌아가셨단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당시 현장 경찰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었음에도, 나이며 체면도 잊어버리고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만큼 교수님을 떠나보낸 슬픔이 컸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교수님이 내 곁을 떠났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은사 김 교수님은 ‘내 운명을 바꾸어 놓은 분’이셨다. 당시 서울경찰청에서 힘든 직장생활과 대학 공부를 병행하고 있을 때였다. 직장에 다니면서 공부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현장 경찰인 나는 시위 진압에 동원되는 시간이 많아 대학에 입학하고서도 학업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 공부가 힘들어질 때마다 교수님께서는 학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충분한 조언으로 용기를 주었고, 간혹 수업을 듣고서 어려움에 부닥쳐 있을 때마다 해결책을 마련해 주는 등 학교생활 내내 천사 같은 조력자였다. 수년 동안 현장 경찰로 생활하면서 주간엔 시위 진압, 야간엔 술에 취한 사람과의 시달림 등으로 매우 어렵고 힘들 때였다. 그때마다 은사님께서는 유일하게 함께하셨다.

 

학교와 직장을 병행하는 동안 교수님을 따로 만날 시간은 거의 없었다. 언젠가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나오면서 교수님께 식사 한번 하자고 제언했지만,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식사는커녕 차 한잔할 여유도 내기가 어려웠다. 당시엔 근무 후 학교에 갔기 때문에 쉬는 시간엔 피곤한 졸음을 쫓고자 강의실 밖에서 늘 시간을 보냈다. 우연히 강의실 밖에서 교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있어 무심코 야간에 일어났던 현장 경찰 이야기로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끝내지 못하고 수업에 임하였고, 다음에 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학교 앞 의자에서 남은 이야기를 했다. 사실 그때는 내가 직장생활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고 사직서를 품고 다니던 시기였다. 말만 번지르르하고 정작 해주는 것이 없는 직장에 대하여 그만두겠다는 넋두리를 포함해서 많은 이야기를 교수님께 늘어놓았다. 문득 시간을 보니 벌써 한 시간이 흘렀다. 비슷한 내용의 반복이었지만, 교수님께서는 꽤 심각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셨다.

 

시간이 흘러 한 학기가 지난 어느 날, 교수님과 함께 할 기회가 생겼다. 교수님께서 ‘직장은 그만두지 않았지요?’라는 말을 시작으로 가정사며 신변이야기를 질문하셨다. 그래서 솔직하게 지금 사는 곳은 서울이지만, 학교 수업이 끝나면 1시간 걸려 집에 도착하여 다음 날 아침 6시경 출근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면서 그러면 언제 공부하냐며 이것저것 많은 자료를 챙겨주시면서 휴일에 공부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현장 경찰은 휴일이 더 바쁘다는 사실을 모르셨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교수님과 만난 지 벌써 한 시간이 흘렀지만, 교수님은 각종 애로사항을 또다시 질문하였고, 나는 지난 시간보다 훨씬 더 세밀하게 답변했다.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고 싶은 말이 이렇게도 많이 쌓였냐면서 ‘아직도 사직서 품에 넣고 다니냐.’며 그걸 보자고 하시더니, 사직서를 받자마자 찢어버렸다. 그리고는 ‘가족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가정의 소중함에 대하여 재차 설명하시면서 가족을 지키려면 직장은 꼭 필요한 것이라며 함부로 사직서를 낼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 남자는 항상 가정을 우선 생각해야 한다. 라면서 내 손을 꼭 부여잡고 안아주었다. 그날이 후, 교수님께서는 학교생활 내내 졸업할 때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많은 이야기를 들어 주셨다. 당시 교수님을 뵙고 온 날의 업무 일지에 이런 글이 적시되어 있다.

 

“나는 만나면 힐링이 되는 사람이 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며 내 처지를 비관하지 않게 되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늘 어렵고 힘든 내 삶에 큰 용기를 준다. 만날 때마다 내 마음을 다잡게 해주고, 특별히 내게 충고나 조언하지 않는데도 그냥 대화만으로 마음이 편해지는 분이다.”

 

현장 경찰은 늘 시간에 허덕인다. 그렇게 분주하게 지내던 어느 날, 교수님께서 직접 경찰서로 찾아오셨다. 그동안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접 교수님을 뵙고 대화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잠깐 휴게실에서 커피 한잔을 마신 후 음식을 대접하겠다는 내 말에 흔쾌히 허락해 주시면서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꼭 해야 한다’고 하셨다.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사실 내가 말하면서도 의아했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부탁한 적이 없는 교수님이었기 더 의문스러웠다. 사건 관련해서 무슨 청탁을 하려는 것일까. 궁금증도 많았지만 일단 식당을 향해 출발했다. 고기 굽는 한정식집으로 안내하자 고기는 잘 안 드신다고 하면서 거부하였고, 일식집으로 안내하자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또다시 거절하셨다. 그러고는 모처럼 만났는데 간단하게 식사하자며 학창 시절처럼 국밥 한 그릇을 원했다. 참 소박하고 검소한 분이셨다. 식사를 마치자, 교수님께서 갑자기 봉투 하나를 불쑥 내밀면서 곧 명절인데 그 봉투에 있는 것으로 가족 선물을 사라는 것이었다. 이건 아니라고 극구 거절했지만, 교수님께서는 식사하러 오기 전 약속을 잊었냐면서 부드럽게 내 손을 꼭 잡아주면서 한마디 하셨다.

 

“경찰은 권력기관이라 돈의 유혹이 많다. 그런 유혹을 떨치려면 마음이 편안해야 한다. 내가 큰 부자는 아니지만 필요한 돈은 줄 수 있다. 만약 급하게 돈이 필요한 일이 생길 때 연락하면 해결해 줄 수 있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동안 소식은 없었지만, 제자가 혹 금품수수 등 비리에 연루되지는 않을까 늘 걱정이 많았다면서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한동안 할 말을 잊고 뜨겁게 뛰는 가슴을 억누르느라 애를 써야만 했다. 당시에 한창 교통경찰 비리 문제가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도배되던 때였다. 그때 하필이면 내가 교통경찰로 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교수님께서 직접 경찰서를 방문하여 단단히 당부하셨다. 또한, 서울경찰청 수사대에 근무할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힘들어할 때 강남 병원에 입원을 주선하여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주셨고, 심지어 보험이 미치지 않는 비급여 병원비까지 모두 해결해 주셨다. 그러고는 사고 관련, 격분하여 가해자한테 절대 어긋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며, 단돈 일 원도 받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시면서, ‘경찰관이기 때문에 품위를 손상하는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재차 강조하셨다. 병원 퇴원 절차를 모두 마친 후, 교수님께 뜻하지 않게 지출한 병원비를 모두 부쳐주겠다는 말과 함께 즉시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네가 앞으로 누군가를 도울 일이 있을 때 이번에 내가 쓴 돈을 네가 쓰면 그것이 곧 나에게 돈을 갚는 것이 된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손을 번쩍 들어 작별 인사를 건네는 뒷모습이 어찌 그리도 크고 멋져 보이던지. 그날 한 가지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사랑이나 자비의 마음을 베푼 사람에게 되갚아야만 갚는 것이 된다는 식의 계산적이거나 단선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큰 교훈을.

 

내가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교수님은 다가오셨다. 언제나 모든 것에 대하여 주의 깊게 듣고, 말씀하시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음을 열고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교수님께서는 굳이 힘내라는 둥 근사한 말은 보태지 않았다. 늘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와 따스한 관심으로 다가오셨다. 교수님의 그 자상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다. 이후 나도 사람을 만날 때마다 늘 교수님처럼 배려하려고 나름대로 큰 노력을 해 봤지만, 교수님의 그 체화된 인간미에는 미칠 수가 없었다.

 

어느덧, 교수님의 6주기 기일(忌日)이 지났다. 우연처럼 내게 왔던 교수님께서는 세상을 떠나셨지만, 내 마음은 항상 교수님을 진정으로 존경하며 사랑하고 있다. 이 지면으로나마 고마운 마음을 일부 표현하는 것이 교수님께 누가 될까 봐 망설였지만, 마치 신부님께 고백성사한 것처럼 마음은 한결 가볍다.

 

얼마 후, 나도 34년의 경찰 생활을 모두 마감했다. 당당하고 명예롭게 퇴직했지만, 우여곡절이 많은 그 힘든 생활을 모두 이겨 낼 수 있었던 것은, 교수님의 그 체화된 인간미를 배울 수 있었기에 더 쉽지 않았을까. 학창 시절, 짧은 만남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인연 속에서 존경하는 교수님의 훈훈한 마음과 따뜻한 이야기를 이 지면에 담을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 내 청춘 안에서 교수님과의 관계를 빼면 또 무엇이 남아 있을지.

 

 

수필가 김종걸 

 

격 월간지 〈그린에세이〉 신인상으로 등단.

현) 한국문인협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그린에세이 작가회 회원.

현장경찰로 34년 근무 후, 경정(警正)으로 퇴직

 

<수상>

2014년 제17회 공무원문예대전(현, 공직문학상)수필부문 행정안전부 장관상 수상.

2016년 제17회, 2018년 19회, 경찰문화대전 산문부문, 경찰청장상 수상.

2021년 경기한국수필가협회 수필공모 우수상.

2019년 대통령 녹조근정 훈장 수상 및 국무총리 표창 수상.

 

<작품집>

공저) 언론이 선정한 한국의 명수필 (2022. 03)

내가 그린에세이 (2023. 03)

프로필 사진
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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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플러스 대표이자 DESK 박상희 기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