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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어머니의 칭찬

수필가 김종걸

사무실 위치가 산 아래라서 가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연녹색에 취해 꽃 빛으로 물들어 가는 노을을 본다. 해 질 녘, 잠시 노역의 시간을 내려놓은 듯, 산 아래는 고요한 안식과 함께 노을의 잔광이 쓸쓸하면서도 평화롭기에 그지없다. 하지만 어둠이 짙어 갈 때쯤엔 멀리 보이는 산꼭대기가 저녁노을에 물들면서 아슴아슴 어린 시절이 다가오기도 한다.

어린 시절을 회상(回想)하다 보면 그때마다 어머니 생각은 더 간절하게 다가온다. 늘 동구 밖에서 학교 갔다 돌아오는 아들을 기다리던 생시의 고운 얼굴이 절절히 그리워진다. 그 시절, 국어 시간에 글짓기 대회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흔한 장려상조차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늘 '내 글이 최고로 잘 쓴 글'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칭찬이 밑거름되어 지금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면 선생님들께 귀여움을 받는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렇지 못했다. 고분고분하거나 순종적이지 않아서 그랬는지 모른다. 몇 번에 걸친 부딪침으로 인하여, 세상은 그 사람의 진심, 그 사람의 노력, 그 사람의 이상(理想)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알았다. 세상은 나 같은 사람에게 별로 우호적이지 않는다는 느낌, 세상의 주류에 속하지 않았다는 자각은 새로운 의지를 불러 일으켰다. 그렇게 늘 현실은 비판적 시각을 내게 심어 주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잘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남다른 교육관 덕분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자식 중에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키우셨다. 그 점에 있어서 정말 신기할 정도로 의식이 앞서간 분이셨다. 나는 어머니에게 자식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았다. ‘존중받으며 자란 사람이 남을 존중할 줄도 아는 법이지 않은가.’ 육십여 년 넘게 살아왔던 내 생각의 밑천은 모두 어머니께서 마련해 주신 것이었다. 그 밑천을 바탕으로 지연과 학연, 편견과 억압의 답답한 틀 속에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보탬 될 수 있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경찰관으로 임용되어 인사를 하러 갔던 첫날부터 살아계실 때까지 늘 두 손을 꼭 잡으면서 말씀하셨다.

“힘없다고, 돈 없다고, 인맥 없다고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가 힘들다면야 세상에 공권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항상 약자 편에서 일해야 한다.”

어머니의 간절한 당부에 따라 나는 늘 약자의 편에 서서 모든 일을 감당해야만 했다.

경찰관으로 34년 근무를 무사히 마치고 이곳 화성에서 비로소 영혼의 닻을 내리게 되었다.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오롯이 글 속에 담아내려고 정착했다. 특히 문학과 생활이 서로를 아우르며 삶과 예술이란 총체에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어린 시절의 정서를 회상(回想)하며, 산으로 들로 쏘다녔고, 밤이면 책을 찾아 읽었다. 늘 책을 벗 삼고, 땅을 보면서 아래로 향하는 마음을 배웠다. 마음은 외롭고 가난하지만, 책을 보면서 가끔 지나온 시간을 그리워했다. 상추며, 호박이며, 각종 채소로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을 받으면서 생의 의미와 어머니에 대한 정애(情愛)를 새로이 깨달았다.

세월이 흘렀다. 문단의 새내기가 되어 무엇인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절실한 정신의 갈증을 풀기 위해 삶에 의미와 본질에 대한 사유를 탁본하듯 성심을 다해 몰입했다. 글에 대한 높낮이를 겨루어 보고자 하는 상이나 명예도 탐해보지 않았다. 오로지 쓰는 작업만을 통해 마음을 비워 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정직하게 흘려보낸 눈물 어린 언어들이 모여 가슴 차오르는 글이 되었다. 누가 글을 읽어주면 고마웠고, 읽어주지 않으면 혼자서 지어낸 독백이었거니, 텅 빈 사무실에서 혼자 벌인 지성의 축제이었거니 여겼다. 긴 인생에서 단순한 감각에 따라 일어나는 감정표현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늘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최근 화성문화재단에서 2024 화성 예술 활동 지원 문학 분야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또 한 번 때를 얻은 셈이다. 옛말에 ‘때를 얻음에 조용히 하고, 잃음에 있어선 편히 머물라’ 했지만, 자꾸만 눈앞이 흐려진다. 오랜 유랑을 끝내고 귀향의 강가에 서 있는 듯한 감회가 일시에 밀려온다. 작가가 되겠다는 희망을 품지도 않은 나에게 글 잘 쓴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이 가슴속 깊은 곳까지 차오른다. 그 감정을 다독거려볼 요량으로 창밖에 나와 연녹색으로 출렁이는 앞산을 바라본다.

 

◀ 김 종 걸 ▶

○ 격 월간지 〈그린에세이〉 신인상으로 등단.

현) 한국문인협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그린에세이 작가회 회원.

○ 수상

2014년 제17회 공무원문예대전(현, 공직문학상)수필부문 행정안전부 장관상 수상.

2016년 제17회, 2018년 19회, 경찰문화대전 산문부문, 경찰청장상 수상.

2021년 경기한국수필가협회 수필공모 우수상.

2019년 대통령 녹조근정 훈장 수상 및 국무총리 표창 수상.

○ 작품집

공저) 언론이 선정한 한국의 명수필 (2022. 03)

내가 그린에세이 (2023. 03)

○ 현장경찰로 34년 근무 후, 경정(警正)으로 퇴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