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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물류센터발 절망과 분노, 화성시장은 어디 있나?

동탄2신도시 유통3부지 물류센터 철회 비상대책위원장 
고준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한 달 전인 2024년 10월 12일 토요일. '대한민국 정보공개포털' 웹사이트의 검색어란에 '유통3부지'를 넣고 엔터를 눌렀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번에는 '장지동 1131'이란 주소를 넣어봤다. 어라? 필터링 된 몇 개의 문서가 눈에 들어왔다.

각 문서에는 '장지동 1131번지 동탄2 도시관리계획(시설-유통업무설비) 입안의 제안'이라는 제목이 공통적으로 포함돼 있었다. 비공개 문서였지만 그토록 바라던 '유통3부지에 들어설 시설이 드디어 수면 위로 나올 때가 된 것만은 분명해보였다. 동탄2신도의 마지막 유통부지, 이 거대한 부지에 대체 뭐가 들어올까. 기대감에 들뜬 채 주말을 보냈다.

 

월요일 유선으로 문의하니 뭔가 알려주길 꺼려하는 듯한 담당 주무관. 뭔가 느낌이 쎄 하다. 재차 물어보자 시설이나 규모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입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기대감은 순식간에 절망감으로 바뀌었다. 지역 주민들을 분노하게 한 초대형 물류센터, 이것이 우리 주민들에게 알려진 첫 순간이었다. 

 

물류센터의 규모는 이제 대부분의 주민이 알고 있을 것이니 너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지하 포함 121미터. 지상만 90미터라는데, 이건 아파트 30층 높이다. 시설의 총 바닥 면적은 축구장 88개를 합친 것과 같다. 사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규모에 할 말을 잃게 한다. '괴물 물류센터'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다. '물류성벽'이라고 말하는 주민도 있다.

 

이 거대한 물류센터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우리 주민들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밤에 잠을 못 잔다는 주민도 있다. 물류센터라는 시설만으로도 충격적인데, 규모가 커도 너무 크다. 주거지와도 근접해있다. 물류센터 전방 270미터부터 아파트 밀집지역이 분포해있다. 심지어 바로 앞 도로 건너편에는 주택가가 형성돼있다.

 

거대한 물류성벽이 마등산을 통째로 가려버리고 화성시의 '야심작' 생태공원이 꽁꽁 숨겨질 경관은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아도 교통난이 심한 주변도로는 마비될 수도 있겠다 싶다. 인근의 도로는 화물차의 불법주정차로 기능을 다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급격히 늘어난 대형트럭은 통행에 큰 위협이 되며, 대형사고 유발의 원인이 된다. 그 트럭들이 아이들이 다니는 시가지나 대로변을 통행해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 약 300억원의 혈세를 들여 조성하는 장지생태공원은 물류센터의 차지가 될 것이며, 생태계 파괴 또한 염려된다. 어떻게든 주민들을 달래보고자 예쁘장한 자료까지 만들어가며 포장하려 애썼지만, 물류관련 시설이 전체의 90%에 육박한다는 팩트는 변함없다. 아무리 좋은걸 끼워 넣어도 대세는 물류창고인 셈이다. 삶을 즐기고자 그런 곳을 찾을 시민이 있을까. 요약하자면, 주민들에게 '득'은 없고 '해'만 되는 기피 시설이다. 

 

화성시는 담당부서부터 시장까지, 말을 짜 맞추기라도 했는지 반응이 일관적이다. '도시계획시설로 지정된 부지가 정상적으로 매각됐고, 사업시행자가 법에 맞게 사업안을 제출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반려할 수 없다'는 말을 강조한다. 물론 주민 의견을 수렴한다는 말을 하긴 한다. 제아무리 주민의견을 반영한다 한들, 계획 자체를 완전히 뒤집지 않는 이상 주민들의 우려가 해소될 리는 만무하다.

 

정명근 시장의 발언은 몹시 당황스럽다. 아니 곰곰히 생각하자니 화가 치민다. 그는 "소유자의 재산권 행사에 관한 문제이므로 행정적으로 강제할 수 없다. 법적으로 정해진 대로 한다"고 했다. 사업시행자의 재산권은 지켜주고, 주민의 삶과 안전은 위험에 처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시민을 대표하는 사람이자 시와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 맞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정 시장의 이 발언은 시민을 위한다는 생각이 없거나 무능하거나, 무책임하거나, 이 셋 중 하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무리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도 시민들의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시장이 이런 태도를 취해선 안 된다. 기업의 재산권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시민의 삶과 안전에 대한 가치보다 높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법이 가진 중요한 기능은 시민의 안전하고 윤택한 삶이며, 따라서 시민의 삶은 그 어떤 것과도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민생이 어려움에 처한다면, 삶을 걱정하는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같은 눈높이에서 시민을 보호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는 게 참된 시장의 자세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겠다. 법이나 조례도 그것을 판단하고 활용하는 결정에 따라 방향은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 단순히 법대로만 한다고 주장한다면, 시장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문득 과거 산업단지 상황이 떠오른다. 이번 물류센터 사업과 상황은 다르지만, 우려하는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당시 시장은 집회 현장까지 찾아와 "시민들이 원하지 않는 것이 들어와선 안 된다"며 앞장서 저지에 나섰다. 그런 면에서 현 시장의 모습은 시민 입장에서 절망적으로 느껴질 만하다. 핵심은 시민들을 위하고 보호하려는 태도인 것이다. 

 

그리고 법대로 한다는데, 정 시장은 본 사업안이 지금까지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법과 조례를 다 지켰고, 다수의 공감을 얻을 만큼 잘 진행됐다고 확신하는지 묻고 싶다. 

 

도시군 계획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 2조(영향을 주는 도시군 계획시설인 경우 규모 지정), 5조(도시군 계획시설의 규모), 8조(환경, 문화, 경관의 보호), 8조의 2(도시안전 및 건강), 63조(도심지 교통혼잡 경감), 화성시 자치법규 2조(갈등 유발 시설의 사전고지) 등을 다 준수했다고 보는가? 정확히 알고 싶다면 직접 설명해줄 수 있다.

 

국가의 최상위법은 헌법이다. 그런데 헌법보다 높은 법이 있다. 그게 바로 국민정서법이다. 국민이 마음만 먹으면 헌법도 당해내지 못한다. 국민이 바라는 바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지난 주 목요일 첫 집회에 남녀노소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행진에 동참했다. 정확한 인원은 모르겠지만 400명 내외로 추측된다. 당시 시민들은 '즉각 중단하라', '당장 철회하라', '시민을 보호하라', '화성시장 사퇴하라' 등을 외치며 절규했다. 시민이 화성시의 주인이고, 시민을 외면하는 시장은 있을 수 없다.  

 

주민을 대표해 최전선에서 뛰며 싸워온 지도 어느새 한 달이 됐다. 그동안 일과 가족, 취미 등 개인적인 모든 것을 거의 내려놓고 달려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이 본인 생일이다. 그 사실을 어제 빼빼로를 받고서야 알았다. 빼빼로데이 다음날이 생일이라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 머리에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이 없고 다른 것을 신경 쓸 여력도 없다. 

 

오늘 아침에는 시청에 1인 시위를 다녀왔다. 이번이 세 번째다. 이런 생활에 지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다. 하루 빨리 이 사업안이 백지화되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 유통3부지가 물류센터가 아닌 다르게 활용되길 바라며, 그 모든 과정에서 시와 시민이 함께하길 원한다. 부디 지자체장이라는 본분을 망각하지 말고 시민의 눈높이에서 이 사태를 준엄하게 받아들이기를 정명근 시장에게 촉구한다.

 

2024. 11.12

동탄2신도시 유통3부지 물류센터 철회 비상대책위원장 

고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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